이대용 전 주월남공사 월남패망증언7-1
대선2등후보가 공산당 프락치
- FBI에게 발각되다
< 이대용 장군은 6․25전쟁에 보병 중대장으로 참전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해서 수통에 물을 담기도 했다. 이후 최전선을 누비며 사선을 수없이 넘었다. 1975년 월남패망 당시엔 주재 공사로서 마지막 한 명의 교민까지 철수시킨 후 본인은 월맹군에게 억류되어 5년간 정치범 수용소 생활을 겪었다. 이 글은 이대용 장군이 지난 3월 8일 ‘선사연역사포럼’에서 강연한 원고다. 한국의 정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절실한 심정이 93세 고령의 이대용 장군으로 하여금 156매에 달하는 육필원고를 작성하게 만들었다.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선사연)’ 선사연역사포럼은 이 전쟁영웅이 전하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감으로 이 글을 올린다.>
(3) 남베트남 민선 제 2공화국 탄생
임기 1년의 민선 제헌국회의원 117명 이 7개월간에 걸쳐 제정한 새 헌법에 따라 1967년 5월부터 남베트남은 대통령선거전에 들어갔다. 각 정당들의 분열, 각 시민이익단체들의 이합집산에 따라 11명의 대통령 후보가 난립하여 입후보 등록을 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나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입후보자가 있었다. 그는 저명한 변호사 쭝 딘쥬(TRUNG DINH DZU·張廷裕)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하며 유권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 베트남민족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하고 있으며, 외세마저 끌어들여, 우리 동족의 시체는 쌓여 산을 이루고, 피는 흘러 내를 이루고 있다. 우리조상들이 하늘에서 이를 내려다보실 때 얼마나 슬프시겠는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북폭(北爆)을 즉각 중지시키고, 북베트남측과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하겠다. 나를 찍어달라”
많은 사람들은 그를 용공 친북인사로 의심하고 있었으나,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민족주의자이며, 민주주의 신봉자이고, 평화주의자이며, 진실한 불교도이니 믿어달라고 강조했다. 그가 거물급 비밀공산당 프락치였다는 것이 탄로난 것은 남베트남 패망 시 난민(難民)으로 가장(假裝)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고관(高官)들과 계속 사귀며 중요한 비밀 정보를 수집하여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 공산정권 수뇌부에게 비밀루트를 통해서 보내다가 미국 FBI에게 발각 되어 1978년에 체포되어 미국 법정에서 쭝 딘쥬가 간첩죄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을 때였다.
(4) 남베트남 민선 제 2공화국 출범
1967년 9월 3일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웬 반티우(NGUYEN VAN THIEU·阮文紹)는 1,649,561표를 얻어 당선되고, 쭝 딘쥬는 817,120표(전체 유효투표 4,735,404표의 17.3%)를 얻어 당선에는 실패했으나 11명의 입후보자 중에 2등을 하는 놀라운 득표력을 보였다.
이어서 1967년 10월 1일 실시된 남베트남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총 당선자 137명 중 공산프락치 내지는 친북용공주의자로 의심되는 의원이 24명이나 있었다. 이는 공교롭게도 쭝 딘쥬의 득표율인 17.3%와 거의 일치한다. 1967년 10월 30일 민선대통령 웬 반티우는 취임식을 갖고 제 2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지형(地形)상, 베트남-캄보디아 국경선을 이용하여 북베트남 공산군이 얼마든지 쉽게 남베트남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남베트남에 연합군 전투부대가 파견되자 북베트남공산군은 대대적으로 남파되어 자유진영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남베트남-캄보디아 국경지대에는 광대한 숲으로 덮혀있는 정글지대가 수 없이 많이 산재해 있어 연합군의 지상기동(地上機動)에는 제한이 많았으나 그래도 연합군은 큰 승리를 거두어 나가고 있었다. 연합군의 승리는 다음 <표3>에 표시된 기록과 같다.

미국 상원의들도 프락치의 정치공작에 속아 넘어가
(5) 공산군의 음력설 공세와 미국의 정책변화
베트남인들은 음력설을 가장 대대적인 축제일로 삼는다. 그래서 음력설이 되면 해마다 북트남 공산군과 연합군 측은 3일간의 휴전에 합의하고 축제분위기에 깊이 빠져 모두 즐기며 사물놀이도 하고 떡도 먹으며 지내게 했다. 공산군들도 이 휴전은 꼭 지켜왔다. 관례에 따라 공산군과 연합군은 1968년의 음력설날(양력 1월 31일)부터 3일간 휴전에 합의하고 푹 쉬게 했다. 남베트남군 장병들은 휴가도 가고 외출도 하고, 연합군은 긴장을 풀고 푹 쉬고 있는 음력설날 새벽에, 공산군 특공대들은 사이공 시내의 독립궁, 주 베트남 미국 대사관, 방송국, 기타 주요건물을 일제히 공격하고, 1개 소대 병력의 공산군은 야밤에 허를 찔린 미국대사관을 점령했다. 이 공산군의 음력 설날 기습공격은 사이공뿐만 아니라 남베트남 전(全)도시, 읍 기타 마을에 걸쳐 감행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연합군의 뒤늦은 대대적인 반격에 의하여 공산군은 막대한 병력손실을 입고 크게 패전하고 말았다. 소위 베트남해방민족전선(베트콩)의 군대는 이때 입은 손실로 재기(再起)가 불가능해서 북베트남 공산군 7만 명을 빌려다가 겨우 재편성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렇듯 공산군은 전술적으로는 대패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대승을 거두었다. 바로 이것이 공산측이 노린 음력설 공세의 전략적 목표였다.
즉, 음력설 공세는 매스컴을 타고 연일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특히 미국의 조야는 깜짝 놀랐다. 특히 미국 상원의원들은 ‘미군이 남베트남에 파견되어 3년이나 되었고, 그 곳에 49만 명의 미군이 전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이공 중심가에 있는 주 베트남 미국 대사관이 공산군에게 점령당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베트남전에서 연합군 측이 완전 승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회의를 강하게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년에 남베트남 대통령 선거 때 쭝 딘쥬가 주장한 베트남 남북화해평화협상에 관해 깊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쭝 딘쥬는 남베트남 대통령 당선에는 실패했으나, 수완이 뛰어난 이 비밀 거물 공산주의자는 자기 정체를 철저히 숨겨 위장하고 미국 상원의 맨스필드 의원, 훌브라이트 의원, 맥거번 의원 등의 중진들과 선을 대어 이 들과의 교우 관계를 넓히고 있었다.
미국 상원 중진들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기 전에 쭝 딘쥬의 대북화해평화협상 제의를 수용해서 공산 측과 협상에 들어가라고 존슨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었다. 존슨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티우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티우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즉, “북폭(北爆)으로 인해 북베트남인들은 심리적으로 공황에 빠져있다. 북베트남군의 사기는 매우 위축되어 있다. 우리 측은 전장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고 있으며 군사적으로 계속 밀어붙이면 얼마 안 가서 남베트남에서 북베트남 공산군을 완전히 축출할 수 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티우 대통령을 계속 설득했으나 티우 대통령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 글은 이대용 장군이 지난 3월 8일 선사연역사포럼에서 강연한 원고”베트남 공산화통일이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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