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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패망시와 닮은 한국의 현실
  • 작성자 : 선사연역사포럼
  • 작성일 : 2017.04.15
  • 조회수 : 5773

이대용 전 주월남공사의 월남패망증언 7-5

 

월남패망시와 닮은 한국의 현실

 

 < 이대용 장군은 6․25전쟁에 보병 중대장으로 참전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해서 수통에 물을 담기도 했다. 이후 최전선을 누비며 사선을 수없이 넘었다. 1975년 월남패망 당시엔 주재 공사로서 마지막 한 명의 교민까지 철수시킨 후 본인은 월맹군에게 억류되어 5년간 정치범 수용소 생활을 겪었다. 이 글은 이대용 장군이 지난 3월 8일 선사연역사포럼에서 강연한 원고다. 한국의 정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절실한 심정이 93세 고령의 이대용 장군으로 하여금 156매에 달하는 육필원고를 작성하게 만들었다. 선진사회만들기연대(선사연) 선사연역사포럼은 전쟁영웅이 전하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감으로 이 글을 SNS에 올린다.>

 

10. 남베트남 패망시와 한국의 현실, 그 유사성

 

(1) 대북(對北)관의 차이에서 오는 남남갈등 유사성.


  남베트남 제2공화국 대통령 선거 때, 쭝 딘쥬 후보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그 때 까지는 금기시 되어 있던 대북화해 평화정책을 내세우며 민족제일주의, 민족지상론을 펴며 북폭중지(北爆中止), 평화협상개최 등을 주장하며 남북베트남 한민족 정서에 불을 지필 때 웬 반티우 후보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즉 자유는 가장 소중한 개인적·사회적·국가적 가치(價値)이며 이를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을 반드시 멸망시키겠다고 이를 악물고 작심한 나라는 이웃 캄보디아도 아니고, 라오스도 아니고, 태국이나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도 아니다. 바로 베트남민주공화국이란 이름을 가진 북베트남 공산집단이다. 그들의 대남전략 목표는 확실히 남반부를 무력 적화통일 하는 것이다. 북베트남 공산집단의 생태적 본질로 볼 때, 이 대남전략 목표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이다. 그들의 ‘민족지상’이라는 말은 그들이 적화통일 달성을 위해서, 우리 남베트남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우리의 전력(戰力)을 극도로 약화시키기 위한 속임수의 용어이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우리 동족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왜 수십만의 북베트남 공산군을 남파(南派)하여 동족을 살해하고 있는가? 남베트남 내에 있는 북베트남 공산군을 전부 북베트남으로 철수시켜라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쭝 딘쥬 측과 웬 반티우 측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입싸움처럼 지루하게 다투면서 남베트남인들의 남남갈등을 조성, 더욱 심화시켜 나가면서, 그 때 까지는 일사불란하게 북베트남 공산집단은 남베트남의 주적(主敵)이라고 생각해 오던 많은 국민들의 대북관을 헷갈리게 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현재 국민간의 대북관 차이로 남남갈등의 몸살을 극심하게 앓고 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2) 남베트남의 대북방심(對北放心)과 우리 대북방심 유사성.

 

 파리평화협정 체결 당시에 미국의 헨리 키신저가 남베트남의 안전보장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여 놓은 5개 안전장치 때문에 북베트남은 꽤 오랜 세월 남침 총공세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낼 것이며, 북베트남은 파리평화협정을 수 십 년간, 최소한 10년 이상은 꼭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안이한 생각을 남베트남인들은 하고 있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가야 할 철저한 반공지도자 티우대통령마저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평화협정 체결 후 남베트남에는 호재의 대박뉴스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1973년 10월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레 둑또에 대한 노벨평화상 수상 결정 발표, 1974년 10월 남베트남의 대규모 유전(油田)발견, 80억 달러 규모의 남베트남 전후 복구 및 경제개발을 위한 미국현지조사단의 1975년 2월 남베트남 입국, 이런 뉴스들 때문에 남베트남인들은 평화, 경제번영의 꿈에 휩싸여 있었다. 북베트남의 남침 총공세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꿈에서 조차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대북방심(對北放心)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2000년 6월 후에 있었던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한반도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과의 남북정상 회담이 있은 직후,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94개 초중고, 그리고 대학생과 교사 2,6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북한 지도층에 대해 ‘싸워야 할 적’ 이라고 답한 비율은 1999년 말에 조사한 것에 비해 <표4>와 같이 놀랄 만큼 크게 변했다.

 

 

  이렇듯 남베트남과 남한은 북측이 속으로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지만, 겉으로 혹시라도 약간 변하고 있는 것 같이 나타나는 좋은 징후가 보이면 얇은 냄비가 끓듯이 단숨에 대북방심을 하는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3) 남측의 주적(主敵)인 북측의 식량난 유사성

 

 남베트남 패망 직전 북베트남의 총인구는 2,379만 명으로 북한의 현재 총인구 수와 엇비슷했다. 이들의 식량사정을 비교하면 <표5>와 같다.

 

 

  기아상태마저 북베트남과 북한은 이렇게 닮은꼴이다.

 

(4) 남베트남과 남한의 친북세력 비율의 유사성

 

 남베트남 제2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한 친북 정치지도자로 알려진 쭝 딘쥬의 득표수는 총 유효표수의 17.3%였다. 그리고 그 후 한 달 만에 있었던 남베트남 하원의원(下院議員) 선거에서는 친북세력으로 분류된 24명이 당선되었다. 이는 당선된 하원의원 총 인원수 137명의 약 18%에 해당한다.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베트콩) 법무장관을 지낸 쭝 뉴탄에 의하면 남베트남공산 핵심세력은 북베트남 공산당원 약 9,500명. 인민혁명당원(베트콩) 약 4만 명, 합계 약 5만 명이며, 이는 남베트남 성인(成人) 총 인구의 약 0.5%에 불과 하지만 이들을 은연중 지지하는 친공·친북세력은 남베트남 성인 총 인구의 약 18% 정도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남한은 2002넌 5월 2일 조선일보와 한국조사연구학회와 한국갤럽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총 응답자의 약 18%가 무조건 북한에 경제원조를 해야 하고, 또 총응답자의 19.5%가 북한이 갈망하는 남한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10년 9월 3일 우리 정부측 고위인사의 비밀증언에 의하면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친북세력은 남한 성인 총인구 중 약 20%를 약간 넘었다고 했다.

 

(5) 북베트남 공산당측과 북한 공산당측의 신용불량 유사성

 

  북베트남은 1972년 1월 27일 체결한 12개국 외무장관이 서명한 파리평화협정을 하루아침에 헌신짝같이 일방적으로 버리며 위반, 파기하고 1975년 3월 10일 남침 총공격을 감행하여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패망시켰다.


  1994년 10월 20일 북한은 제네바에서 ‘앞으로 절대로 핵무기 생산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미국과 합의한 기본합의문서에 서명하고 UN총회에 이를 알렸다.


  1996년 9월 10일 UN총회에서는 모든 형태의 핵실험 금지를 목표로 한 핵실험금지조약을 가결했다. 북한도 이에 참여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북한은 뒷전에서 극비리에 핵무기를 생산하여 보유하는 짓을 했다. 이렇게 북베트남과 북한은 국제신용 불량자라는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6) 북측의 적화통일 후 남측에 대한 인권말살계획의 유사성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베트남의 인접국인 캄보디아는 1975년 4월 17일 공산세력이 캄보디아를 적화통일하자 캄보디아 구(舊) 정부의 군인, 공무원, 지주(地主), 재벌들의 당사자들 및 가족들 약 200여만 명을 대학살했다. 이는 캄보디아 총인구 수 약 700만 명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에 놀란 UN사무총장은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점령하고 적화통일을 달성하자 북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레 준에게 급전(急電)을 보내 만일 북베트남도 캄보디아와 같이 남베트남 구 정권 군인, 공무원, 지주, 재벌들 및 그 가족들을 대학살하면, 베트남의 유엔회원국 가입은 불가(不可)하니 자중(自重)해 달라고 했다.

 

  이미 북베트남은 UN회원국 가입 신청서를 내고 UN회원국 정식회원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캄보디아와 같은 대학살계획이 있었으나 학살은 하지 않고 투옥(投獄)하는 방법만 채택했다. 그러면 지금 북한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2000년 6월13일, 김정일(金正日)은 조선공산당 극비밀(極秘密)당원이며, 남한에서 민족주의자 및 민주주의자로 가장하고 정치가로 활동하고 있던 김모(金某)를 비밀장소에서 만나서 한반도 적화통일 직후(直後), 남한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계획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남쪽의 사대주의자(친미파). 친일파. 부정부패자 정리의 명분(名分)으로 반역자, 반동분자 약100만 명을 사형(死刑)에 처해야한다. 그리고 약 700만 명은 형무소에 잡아넣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800만내지 1,000만 명이 해외로 도망 갈 것이다. 그래도 한반도에 남아 있게 될 총 인구수는 5,000만 명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것도 적화통일 직후 북베트남이나 북한의 대남숙청의 유사성이다.

 

 

(이 글은 이대용 장군이 지난 3월 8일 선사연역사포럼에서 강연한 원고 ”베트남 공산화통일이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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