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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 작성자 : 김병일
  • 작성일 : 2017.07.12
  • 조회수 : 3929

퇴계 선생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2017.07.12.

 

  필자는 10년째 안동 도산에서 새벽 산책을 즐기고 있다. 퇴계종택 뒤켠에 자리한 선비문화수련원에서 산 너머 도산서원까지 왕복하는 길이다. 시간 반 가량 소요되는 5㎞쯤 되는 거리이다. 오르내리면서 산중의 상큼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어둠에서 밝음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을 함께하다 보니 이제는 그만두기 어려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자연의 변화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사시사철이 다 좋다. 새벽녘 맑은 공기를 마시는 산책길이 어디 이 곳 뿐일까 마는 오백년 전 퇴계선생이 거닐던 바로 그 길이기에 의미가 더 각별하다.

 

  대학자요 큰 스승인 퇴계는 후세까지 회자되는 이천여 수의 적지 않은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자주 거닐던 이곳에서도 자연을 읊고 사람의 도리를 밝히는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산책길에서 남긴 시를 읊조리다 보면 선생이 옆에서 인자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듯하다.

 

  요즈음은 거의 매일 선비수련생들이 퇴계가 남기고 떠난 그 현장에 찾아오고 있다. 프로그램은 주로 탐방과 체험 중심인데, 일정이 오전 7시경부터 10시경까지여서 빡빡한 편이다. 그런데 새벽산책은 이보다 빠른 5시경에 시작하니 수련 일정에는 공식적으로 포함시킬 수가 없어 늘 아쉬웠다. 이 좋은 산책을 필자와 수련원 간부들만 즐기니 한편으로는 또 미안하기도 하고. 퇴계선생도 ‘이 즐거운 곳 누구와 함께 그 향기를 맡으리오(樂處何人共襲芳)’라고 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시에 담지 않았던가? 그래서 수련생들이 새로 입소할 때마다 새벽산책을 귀띔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제법 많은 분들이 따라나선다. 이들과 함께 퇴계선생이 남긴 스토리와 시를 나누며 거닐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가까워진다. 함께 퇴계선생의 제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도산서원이 가까워지면 선생의 우리말 연시조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시비가 먼동이 일찍 밝아오는 요즘 더욱 뚜렷이 눈에 들어온다. 한문에 능통한 퇴계가 왜 우리말 시조를 열두 수나 지었을까.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도 인간의 도리를 배워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들도 교훈적인 뜻이 담긴 가르침을 쉽게 외워 노래하고 춤추면서 따라 배울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취지에서 산책길에서는 시간적 여유를 보아가며 몇 수를 수련생들과 함께 읽곤 한다. 요즘 그릇된 세태에 물들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절실하게 다가오는 한 수를 요즘말로 옮겨보자.

 

  벼락이 산을 깨쳐도 귀먹은 자 못 듣나니

 

  밝은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있어도 장님은 못 보나니

 

  우리는 귀와 눈 멀쩡한 남자로서 귀먹은 자나 장님 같이는 아니 되리라.

 

  이 시조가 품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름지기 사리판단을 현명하게 잘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좀 더 가슴에 와 닿는 구체적인 교훈은 무엇일까? 인간은 마땅히 들을 것을 듣고 볼 것을 보아야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왜 안 될까? 이런 삶은 자신의 입장과 이익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삶이다. 시야가 좁아져 온전한 삶은 살지 못하고 반쪽짜리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이나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하고 비판만 받기 십상이다. 소통이 될 리 없고 협조도 받을 수 없고 화합도 이룰 수 없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시에 담긴 가르침을 서로 나누다 보면 수련생들 얼굴에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들어야 할 것을 들으면서 살아가야겠다는 표정이 역력해진다. 그렇게만 하면 매사를 좀 더 넓고 멀리 바라보고 귀담아 경청하는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여러 의미에서 요즘 우려하는 ‘내로남불’도 우리 곁에서 점점 사라질 것이다.


김병일 도산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내용출처: 이데일리-문화.레저-목멱칼럼] 퇴계 선생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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