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보수는 죽었나? 아니면 살았나?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35년 전인가? 1982년 즈음으로 생각된다. 그때 친구들과 열띤 주장을 서로 간에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한 달 전에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고 너의 주장이 맞았다고 하면서 세상에 대한 비판과 현실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국민의 수준이 아직 낮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주장과 나의 주장이 서로 충돌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친구의 정치적 관심으로 정치인 김영삼을 강력하게 믿고 있었고 이분이 정치를 잡아야 나라가 변하고 정치가 변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친구는 마찬가지 김 대중 이 정치를 잡아야 역시 우리의 정치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그 두 사람도 마찬가지 정치를 잡아보아야 틀린 게 하나도 없을 것이며 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주장을 하여 서로 간에 누구의 말이 맞는지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런 주장을 하고 서로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했었던 기억이 전혀 하나도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었는데 한 달 전에 친구는 불쑥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지나간 35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김대중 이 정치를 잡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틀렸고 자네가 맞았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 하고 생각해 보니 그래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난 김대중, 김영삼 모두 정권 잡아 보아야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말하면서 자유 민주연합을 만든 김종필이 왜 자민련이라고 했냐면 우리정치사에서 민주당, 공화당, 사회당 하는데 그 당(黨)자가 무리 당자로 검을 흑자위에 상을 이고 있는 형태이니 검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 당이라는 명칭 보다는 자민련이라는 명칭을 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월이 한 참 흐른 지금 생각해보니 두 거물 정치인이자 전직 대통령인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상태고 영원한 2인자 역시 노환으로 세상밖에 사람이라 지금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따져본들 뭔 이득이 있고 차이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지만 친구는 아마도 자신의 주장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주장과 생각이 어느 날 틀렸다고 생각되었을 것이고 그런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날 대화의 초점은 세상이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치사는 더 후퇴되었다는 것이고 국회의 기능이 너무나 권력이 큰 것도 모자라 어떻게 국민 소환제를 실시하지 않는지 우린 기막히다는 것과 국민들의 수준이 아직 미흡하다는 것에 대화를 주고받았다.
요사이 세상에 자주 나오는 말이 있는데 어떤 이는 보수가 죽었다고 하고 어떤 누구인가는 보수는 갈래갈래 더 갈라지고 죽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유명인은 죽어야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데 과연 대한민국의 보수가 살았는지? 그럼 죽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짱 박혀 있는지? 무얼 하고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난 사람, 뛰어난 사람, 빼어난 사람, 잘난 사람, 말 잘하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사회 잘 보는 사람,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 또 멋있다고 하는 사람, 매력 있는 사람, 그림 잘 그리는 사람, 이렇게 잘난 사람만 있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지천에 깔려있는데 세상은 왜 변하지 않는지 아니 세상은 왜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곳 정치는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지 너무나 가슴 답답하다.
세상은 왜 끝나지 않는 걸까?
왜 태양은 계속해서 빛나는 걸까?
새들은 왜 계속 노래하는 걸까?
파도는 왜 계속 밀려오는 걸까?
나의 눈에서는 왜 눈물이 흐르는 걸까?
나의 사랑이 끝났다면 이세상도 끝나야 되는데!
OLD POP SONG 가사의 내용이다. 아마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지금 세상에 보수가 죽었다고 하는데 그럼 언제 보수는 살아 있었단 말인가? 그럼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 있었다는 말이고?
만약 죽었다고 한다면 보수가 어떻게 어디서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죽었다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 누가 나서서 말해 줄 수 있는가?
죽어야 산다고 한다면 역설적으로 아직 안 죽었다는 말이고 아직 살아있는데 더 갈라지고 갈라져 죽어야 한다면 어디에서 갈라지고 언제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뭐 좀 명확하게 명쾌하게 그 말 잘하는 입으로 그 잘 쓰는 글 솜씨로 누가 보아도 누가 들어도 알 수 있고 이해 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어야 하지 그냥 남들이 말하니까 보수는 죽어야 한다? 아니 더 죽어야 한다? 이게 무슨 해괴한 귀신 씨 나락 까먹는 말이란 것인가?
예전에 한 참 유명하던 것이 있었는데 ENGLISH ALIVE 라는 영어 회화 테이프 세트가 영어회화의 전성기라는 시기가 있었는데 무슨 영어회화 전문가 누구누구 하면서 한 참을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 있었다.
역설적으로 바꾸어서 말하면 살아있는 영어라는 말이다. 즉 살아있는 생생한 영어회화를 강조하고 광고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영어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 영어는 죽어 있었나? 아니면 죽었단 말인가?
그럼 살아있는 한국말은 어디 있고 생생한 한국말은 어느 것이 살아있고 생생한 말이란 것인가?
어디 말꼬리나 잡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허니 세상에 잘 난 사람 많이 있지만 세상을 훤히 꿰뚫어 보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세상을 내다보고 있는 사람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고 나올 생각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세상을 훤히 내다보는 사람이 그리 쉽게 세상을 논하고 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천손의 민족인 우리가 세상에 영웅이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된다는 말인가? 동의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아직 변화하지 않고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은 벌써 알게 모르게 이미 변하고 있고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율곡이 세상을 내다보고 충언을 서슴치 안았지만 정치꾼들은 전혀 듣지 않았다. 왜적이 쳐들어오니 도망가는 길에 그의 안목에 놀라고 율곡이 만들어 놓은 기적 같은 곳에서 기름칠한 나무에 횃불을 만들어 강을 건너 도망가지 않았던가?
그렇게 가르치고 교훈이 있으면 무엇 하나!
세월이 흐르니 전쟁의 참혹함이 지워지기 시작하고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는 지금 세계가 몰락하여 사라지고 있는데 무엇이 사회주의 인지 민주주의 인지도 신경도 안 쓰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사라져 가는 것이 있는데 공중도덕이 사라지고 예의범절이 사라지고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지지 않고 뿌리를 내리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기만하고 국민만 팔아먹는다.
적어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고 책임 질 줄도 알아야 하지만 어디에 봐도 그런 구석은 온데간데없다. 실명제 세상이 되고 전 국민이 전산화 작업이 완료되어 척하면 데이터 자료 뜨는 세상인데 정치는 정치꾼만 날뛴다. 정치 실명제는 안하나?
지워지고 없어져야 될 사회적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오래 간직되어야 될 규범과 모범은 점점 사라진다. 항간에 회자되는 말처럼 그들의 말처럼 보수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갈래갈래 나뉘어져 있는지도 모르고 벌써 죽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대책이라도 내놓고 시원한 바람직한 대응책이라도 세워놓고 있지도 못하면서 잘난 사람뿐이다. 좌파의 탓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보수가 무너진 이유도 모르면서 상대방을 탓한다는 것은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그렇게 잘나고 잘 했으면 어찌 이 지경으로 왔다고 생각하고 죽었다고 하겠는가?
자신들이 더 잘해야 한다고 하고 뭉쳐야 하고 상대방이 못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절대 자신들은 못된 관행과 잘못된 버릇과 제도와 관습을 철저히 버리고 처절하게 반성하면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야지 뭘 버리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없으면서 무슨 마음을 비웠느니 하는지 참 가관이다.
국민들이 민심이라고 자신을 돌보아 주기를 바란다면 오산이고 큰 착각이다. 국민들은 요구한 적이 없다. 자신들이 먼저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버렸지 말이다. 잘못했으면 반성하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그 원인과 이유를 철저히 파악해서 고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될 길이지 나도 너처럼 다시 또 잘못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맥아더는 마지막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고 말을 남겼다면 보수는 죽지도 살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 늙고 병들어 있다고 해야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젊은 보수가 있다면 아직 어리고 보수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판단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하나로 뭉치고 단합하지 못하고 국력과 국론이 분열되어 있다는 것은 냉정하게 냉철하게 우리 자신과 세상을 들여다본다면 누구하나 책임질 수 있는 사람도 책일 질수 있는 제도와 장치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의 허황된 복지만 보이고 어디 노점 상인이 영수증을 끊어준다는 사실은 알고나 있으며 의원 사무실에 자전거 타고 다니고 보좌관이 9명씩이나 없다는 사실은 왜 부각시키지 않는가?
지금과 같은 보수층이라고 하고 보수지도층이라고 한다면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고 필요도 없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보수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더욱이 자신들은 뭉칠 수도 뭉치는 방법도 모르고 갈라질질 줄만 알지 어디 한번 자신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아마도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보수를 살리고, 보수가 죽었고, 죽었다면 조용히 왜 죽었는지 어떻게 환자를 살리고 살릴 수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방법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제발이지 떠들지 말고 그냥 속세를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시끄러워 지는 것이다.
이제 누구 탓을 할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미워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자신부터 무엇을 해야 되는지 할 수 없다면 하늘에 순응해서 자신이 해야 될 것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될 것이다.
順天 者 興 逆天 者 亡 !
하늘을 보고도 무섭지 않고 잘난 척 한다면 하늘이 벌할 것이고
하늘을 보고 자신이 한 일에 알고 따른다면 하늘이 도울 것이다.
2017.8.13.
해성 김 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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