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말까지 빠른 성장과 높은 수익을 구가하던 미국의 기업들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에 들어와 값싸고 품질 좋은 외국 제품들이 미국 시장을 휩쓰는 바람에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에 대처해서 미국 기업들은 뼈를 깎는 경영 혁신 노력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GE는 1980년에 40대의 젊은 CEO를 선임해 직원의 1/4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업종 구조를 과감하게 바꿔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려 진력한다. IBM, AT&T, Walmart, TWA 등 다양한 업종의 크고 작은 기업들도 예외 없이 다양한 생존 전략을 추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1980년대에 미국에서는 M&A 시장이 활발하게 형성된다. 그리고 전문적인 기업사냥꾼(corporate raiders)들이 적대적 M&A를 시도하여 해당 기업이 손 쓸 겨를도 없는 사이에 기업이 매수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이에 대한 방어책의 하나로 1982년 포이즌 필이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당시는 과도한 경영권 공격에 대한 대항 수단으로서 포이즌 필은 비교적 정당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포이즌 필이 M&A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저해한다는 학계의 지적이 지속되고 있고, 2001년 엔론 사태 이후 과도한 경영권 보호에 따르는 도덕적 해이를 줄이자는 의미에서 포이즌 필의 폐기를 주장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캘퍼스 등 기관투자자들과 주주행동주의자들이 포이즌 필은 과도한 경영권 보호로 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폐기 주장을 높이고 있다. 경영진과 주주 사이에 발생하는 대리인 문제에서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법무부는 최근 상법의 기본원칙인 자본충실과 주주평등의 원칙에 예외를 인정하는 신주인수선택권 제도를 도입하여 적대적 M&A시도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상법 개정안을 제시하였다. 법무부는 그 도입 배경으로써 첫째, 적대적 M&A 공격은 쉽고 방어는 어렵다. 둘째, 적절한 방어 수단이 없어 생산적 투자에 사용될 재원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낭비된다. 셋째, 남용방지책이 겸비되어 있으므로 M&A제도 자체를 가로막지는 않는다는 이유이다.
물론 포이즌 필의 순기능도 있다. 특히 전문적인 기업사냥꾼들이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 보다는 단기적인 이윤 추구에 나서 기업을 적대적 M&A를 한 후 기업의 주요자산을 매각하고 단기적 수익을 높여 많은 배당을 챙기고 떠나는 경우에 대항하기 위한 경영자의 방어수단으로서 유효한 기능을 한다.
반면 포이즌 필은 시장에서 어떤 경영상의 이유로 과도하게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하여 경영 혁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법무부가 도입 배경으로 제시한 바와 같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자본자유화 과정에서 외국자본 도입의 폭 넓은 허용과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를 허용함으로써 우리 기업에 대한 공격이 용이해 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포이즌 필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적대적 M&A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순환출자를 통해 적은 지분으로도 소유 재벌의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고, 독립적 사외이사의 경영권 견제 기능이 아직 미흡해 웬만해서는 적대적 M&A가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대기업은 이미 미래가치가 반영되어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사냥꾼이 넘보기는 너무 벅찬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포이즌 필이라는 경영방어책을 도입한다면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과 경영혁신 노력이 지체될 수 있을 것이다.
M&A 시장이 활기를 띤다는 것은 우리 기업구조의 선진화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평소에 자본을 충실화하고,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등 경영혁신을 강화하여 기업을 튼튼하게 만드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개방된 시장에서 공격과 방어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은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아 체질 개선 노력을 강화될 것이다. 포이즌 필은 이러한 시장 메커니즘의 작동을 저해할 수 있다.
외국 자본에 대한 적대적 M&A 규제 완화와 외국 자본의 대량 유입으로 우리의 기간산업이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에 노출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포이즌 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외국 자본의 대부분은 경영권 공격 목적 보다는 자금 조달이 목적이고, 그만큼 우리 경제와 자본시장에 큰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외국 자본에 의한 적대적 M&A가 허용되었고, 과거 소버린과 칼 아이칸에 의한 경영권 획득 시도도 있었지만 이러한 사례가 대기업의 경영 개선에 의미 있는 여파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이웃 일본이 2005년 포이즌 필의 일종인 신주예약권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외국 자본에 의한 M&A가 몇 차례 무산되어 외국인투자자들로부터 많은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을 참고로 해야 할 것이다. 이는 투자 시장으로서의 매력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포이즌 필과 같은 방어 수단이 없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이나 상호출자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해 생산적 투자에 쓰일 자금을 낭비한다는 점을 도입 배경으로 들고 있다.
물론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이 투자자금을 압박할 수는 있지만, 기업이 장래 수익성을 보고 진정으로 투자활동을 하고 싶다면 직접금융시장과 간접금융시장을 통해 얼마든지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더구나 포이즌 필의 도입으로 내부에 축적되어 있던 자금에 여유가 생길 경우 오히려 비효율적인 투자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이번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등 포이즌 필의 도입 요건을 강화하여 남용의 소지를 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기업경영의 선진화를 위해 혁신노력이 계속 필요한 상황에서 포이즌 필을 서둘러 도입하기 보다는 포이즌 필 제도의 장단점을 보다 심도 있게 검토하고 충분한 논의를 거친 다음에 추진해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시장은 만능은 아니지만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기업 등 경제주체들을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새로운 혁신과 창조가 일어나도록 하는 강한 역동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저해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에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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