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규제를 우리 경제의 생명을 위협하는 '암(癌) 덩어리'라고 했다. 뿌리 깊은 암은 아무리 제거해도 다시 재발한다. 정부의 규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정부가 규제 개혁을 국정(國政)의 중요 과제로 추진한 지가 20년이 넘었는데도 왜 대통령조차 통탄해 마지 않는 엉뚱하고 불합리한 규제가 암 덩어리처럼 자꾸 생기고 여전히 도처에 깔려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규제 하나하나가 크든 작든 공익적 근거를 가지고 있고, 또 그 규제로 먹고사는 공무원 조직과 이익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규제가 아무리 엉뚱하고 불합리해도 그것을 없애거나 개선하는 작업은 항상 저항과 마찰을 불러온다. 그 결과로 그동안의 규제 개혁은 주로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은 비교적 무난하고 사소한 규제를 정비하고 규제 총량을 관리하는 소극적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부 규제의 고통은 규제의 개수(個數)가 아니라 하나의 규제라도 국민이 규제로부터 받는 정신적·경제적 부담에 비례한다. 규제 개혁의 초점이 규제의 수량이 아니라 규제 준수 부담의 감소에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또 규제를 도입하는 목적이 정당하므로 어떤 수단이든지 정당화된다는 단순 논리 때문에 불량 규제가 계속 발생한다. 여론의 압력이나 정치적 고려에 의해 규제의 부작용이나 사회적 비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불합리한 규제들이 졸속 도입됐고, 이런 규제들은 규제의 성역(聖域)이 됐다. 부동산·고용·환경·산업안전·균형발전·보건의료·교육문화 같은 분야의 규제는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이 규제들을 개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런 분야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 개혁 없이 우리 경제의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당한 정책 목표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반드시 규제가 아닐 수도 있고, 또 규제 수단을 쓰더라도 좀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주무 부서가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알 것이라는 이유로 규제 집행 부서에 사실상 규제의 입안부터 집행까지 백지위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정부 규제가 집행자 편의 위주로 절차와 기준이 정해지고, 국민이 져야 하는 부담이나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규제가 도입되었다. 따라서 규제 입안과 집행에 비(非)규제 기구에 의한 제3자적 관점의 통제가 필요하다.
의원입법 형태로 도입되는 규제들도 우리나라 규제 품질 저하의 한 원인이다.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안되어 있는 수많은 법안을 보면 규제 만능주의와 계획 관치(官治) 경제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인이 민생을 챙긴다고 할 때마다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규제고, 기존 사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보호 장벽들이다. 결국 시장을 위축시키고 국민의 돈벌이 기회와 일자리를 줄일 뿐이다. 국민을 하늘처럼 받들겠다고 했던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서는 마치 지배자가 된 양 국민을 규제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 국회의 입법 과정에도 행정부와 같은 규제 품질의 사전 점검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불량 규제의 양산(量産)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규제 만능주의도 한 원인이다. 각종 시민단체나 이익단체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정부에 이런저런 규제를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정치권은 여기에 영합하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시장의 실패는 강조하면서도 정부 실패는 외면한다.
우리나라의 규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규제 개혁 시스템의 강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 개혁 방식은 민간이 건의하고 관료가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소위 '상향식(上向式)' '읍소형(泣訴形)' 규제 개혁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한 모델이다. 관료를 이기는 민간이 없음을 증명했을 뿐이다.
이제는 입증 책임을 관료에게 지워야 한다. 행정규제기본법의 취지를 살려 규제 개혁을 '하향식(下向式)'으로 재추진해야 한다. 금년 중에 현존하는 모든 규제를 대상으로 규제의 필요성과 수단의 적정성을 규제 부서가 규제개혁위원회에 입증하지 못하면 그 규제는 폐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후 신설 강화 규제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서 범정부적으로 일관된 규제 품질 관리를 해야 한다.
정부 규제는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상품이다. 상품의 품질은 공급자가 책임지는 것이다. 규제라는 상품의 품질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소비자가 품질관리를 할 수는 없다. 규제 개혁을 정부 기능의 일부로 상설화해서 규제 품질 관리를 전담하는 공무원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규제 개혁이 항구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집요한 개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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