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草斷想22-102회, 인생 별거 있나
愚草 文會穆
全筆家.
22. 10. 24(월)
비운의 王勃과 <滕王閣序>
滕王閣, 江西省 南昌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글을 한 글자도 고치는 일이 없어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고치고 또 고치고 하는데 글 쓰는 재능만 가지고 가능하겠는가.
중국 당나라 때 천재시인 王勃이 그런 인물이다. 단순히 천재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어쨌든 腹稿라는 고사를 만들 정도면 대단한 것이다. 腹稿란 뱃속에 글의 초고를 잡는다는 뜻으로, 王勃은 먼저 먹을 잔뜩 갈아 놓고 술을 마신 뒤, 이불을 둘러쓰고 한 숨 자고 일어나 곧 붓을 잡고 줄줄 써 내려가는데, 한 글자도 고치는 일이 없어서 당시 사람들이 腹稿라 했다 한다. 《唐書》<王勃傳>
왕발의 腹稿는 재능도 있어야겠지만 글을 억지로 생각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 붓을 들기 전에 반복적으로 構想을 익혀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창작을 하는 이들은 비슷한 방법을 통해 영감을 얻거나 구상을 할 것이다. 腹藁, 黙稿라고도 한다.
王勃은 어떤 인물인가. 중국 역사상 요절한 천재가 더러 있지만 왕발처럼 짧은 인생 중 극적인 고사를 전하는 이가 그리 흔치 않다. 왕발은 650년에 태어나 676년에 죽었으니, 나이 겨우 27세였다. 그러나 그는 初唐四傑의 한 사람으로 불리어졌을 뿐만 아니라 <滕王閣序>라는 천고의 명문장을 남긴 인물로 더 유명하다.
≪舊唐書≫<王勃傳>에 의하면, 6세에 글을 지을 줄 알았고, 글의 구상은 막히는 법이 없었다. 나이 14살 때 右相 劉祥道가 그를 조정에 추천하여 664년에 천자가 임시로 주재한 對策시험에 합격하여 朝散郞이란 직책을 받았다. 이후 명성이 알려졌으나 인생은 항상 평탄하게만 흘러가지 않는 모양이다.
당시 황족들은 鬪鷄를 즐겼는데, 왕발이 이를 가지고 <檄英王鷄文>을 짓고 비판하였다가 당 高宗의 미움을 받고 왕부에서 쫓겨난다. 그는 자신의 재주를 믿고 오만했기에 동료들의 미움을 받았다. 이점을 가볍게 보아 넘겨버리기가 쉽지만 인간으로써 가장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그가 괵주의 참군으로 있을 때, 관노를 죽인 사건으로 관계에서 제명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그의 부친 王福畤왕복치도 交趾(지금의 월남 북부)의 令으로 좌천당한다.
명망 있던 한 집안의 보배였으며 가문의 자랑이었던 한 젊은이가 한순간에 가문에 먹칠을 하고 불효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불효자가 된 왕발은 멀고 먼 교지로 좌천된 부친을 뵈러 나선다. 교지로 가는 중간지점인 洪州(지금의 강서성 南昌)에서 都督 閻伯嶼염백서가 등왕각을 중수하고, 낙성식을 하는 날 참가하여 滕王閣序라는 명문을 짓고 이름을 떨친다.
왕발은 이곳에서 몇 달간 제법 대접다운 대접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그해 11월에 영남도독부가 있는 南海(광동성 광주)에 도착했고, 바다를 통해 교지로 가려다가 바다에 빠져서 죽었다. 그때 나이 겨우 27세이다.
아깝게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었지만 <등왕각서>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박학다식하고 뛰어난 문장가였는지 알 수 있다. 엄청난 고사와 고문으로 전문가 조차 해석이 쉽지 않지만 다음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발의 <등왕각서>는 격식을 다 갖추면서도 정서가 뛰어난다. 먼저 연회의 고장인 홍도부에 대한 역사와 찬양으로 시작하여 연회를 주최한 염도독에 대한 칭송과 참가한 사람들의 뛰어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등왕각과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뛰어난 문장으로 묘사하고 옛 고사들을 인용해서 분위기를 띄워준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기 신세 한탄을 한다. 자신은 능력은 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유랑하는 신세이고 아버지도 멀리 교지로 유배되어 있는 처량한 개인사를 이야기한다. 글 중에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히 보인다.
滕王閣은 江西省 南昌 서남쪽, 장강의 지류인 赣江감강 변에 위치하고 있다. 당 高祖 李渊의 아들인 滕王 李元嬰이 653년에 처음 건립하였으며 20여 년 후, 후임 洪州都督 염백서가 중수하고 연회를 여는 자리에 왕발이 우연히 참석하게 된 것이다.
등왕각은 湖北省 武汉의 黄鹤楼, 湖南省 岳阳의 岳阳楼와 더불어 江南 三大名楼라 불린다. 그리고 중국사의 유명한 문인들이 글들을 남겼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글은 崔顥최호의 <登黃鶴樓>, 杜甫의 <登岳陽樓>, 范仲淹의 <岳陽樓記> 그리고 王勃의 <滕王閣序> 이다.
<滕王閣序>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지막 부분에 왕발이 檻外長江O自流로 글씨 한 글자를 비워 놓았다한다. 염백서는 사위 오자장에게 왕발을 찾아 빠진 글자가 무엇인가 알아오라 한다. 왕발은 그의 손바닥에 글자 하나를 써 주면서 염백서에게 먼저 보여주라고 하면서, 그전에는 절대 손바닥을 펴지 말라고 하였다. 오자장은 돌아와서 장인인 염백서 앞에서 손을 펴보았으나 손바닥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바닥을 한참 보던 오자장은 손바닥이 비었으니. 이것은 空자를 뜻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아채렸다. 이렇게 해서 檻外長江空自流의 마지막 句가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난간밖 강물만 무심히 흘러가네.
檻外長江空自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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