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草 斷想 22-105회, 이런 불효가 어디 있단 말인가
愚草 文會穆
全筆家.
22. 10. 31(월)
이태원 사태는 명백한 人災다
曾子가 병이 나자,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이불을 걷고 내 발을 봐라. 내 손을 봐라. 詩經에 이르기를 ‘전전긍긍하여 마치 깊은 못에 임한 것처럼,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한다’고 했는데, 이제 비로소 내가 책임을 면하였음을 알겠노라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 出典: 《論語》<泰伯篇 3章>
주자가 말했다.
증자는 평소에,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毁傷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때에 제자들로 하여금 이불을 걷고 손발을 보게 하였던 것이다. ‘戰戰’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兢兢’은 삼가는 것이다. 연못에 임하면 추락할까 두렵고, 얼음을 밟으면 빠질까 두렵다.
증자는 자신이 신체를 온전하게 보존한 바를 제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보존하는 것이 이처럼 어려우며 장차 죽음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훼상을 면하게 되었음을 알았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윤돈이 말했다.
부모가 나에게 온전한 신체를 주었으므로, 자식은 신체를 온전히 보전하여 돌아가야 한다. 증자가 죽음에 임해 팔다리가 온전함을 보여 주며 그러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를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그렇게 인명사고가 나고도 언제쯤 정신차리려나. 남의 나라 축제를 하면서 청소년을 불러 모으는 상업주의, 모여서 즐기라고 부추기는 언론, 사람이 모이면 인적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은데 안전조치를 언제까지 소홀히 알 것인가. 가정, 사회, 나라가 안전을 이렇게 소홀히 하고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되 뇌이면 무엇하나
人災로 신체발부의 훼손과 인명 손실로 인한 불효는 어떻게 할 것인가.
비극적인 인명참사를 정쟁에 이용하는 싶어 안달인 종북좌파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인권의 탈을 쓰고 또 굿판을 벌리려고 기를 쓸 것이다.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안전불감증의 또 다른 현장, 지금도 용감한 대한민국 국민은 압사 당하려고 손잡이 안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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